"李承晩 선견지명 '농지개혁', 南공산화 막다"

김성호 농지개혁 전문가,
우남 이승만연구회 46차 콜로퀴엄서 강조


이승만 초대 건국 대통령이 북한 김일성의 공산당을 막으려면 농지개혁부터 하라고 한 것은 농지개혁에 대해 그만큼 깊은 생각을 갖고 있고, 또 공산당이 토지를 이용해 어떻게 농민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김성호 농촌경제연구원 고문이 말했다.

또 1950년 당시 남한에서 이 대통령 지시에 의한 농지개혁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6·25남침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에 의해 토지개혁이 되었다면 당시 남한의 농민은 다 김일성 편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농민에게 있어서, 특히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토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20일 오후 3시 정동 제일교회에서 열린 우남 이승만연구회 제46차 콜로퀴엄. 김성호 고문이 강연하고 있다. ⓒkonas.net


따라서 당시 사회에서 가장 큰 생산수단인 토지가 공산화되느냐, 되지 않았느냐를 봤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 있어서 농지개혁은 이승만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만에 하나 그렇지 못했다면 김일성 좋은 일만 할 뻔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농지개혁과 관련해 전반적인 자료를 집대성한 '농지개혁사연구'(1989,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집필자로도 잘 알려진 김성호 고문은 20일 오후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우남 이승만연구회 제46차 콜로퀴엄에서 '이승만과 농지개혁-뒷 이야기와 그 현대적 의미'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6·25전쟁 이틀 전 남한에서의 농지개혁이 주는 의미를 한마디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선견지명'으로 표현했다.

▲ 김성호 고문. ⓒkonas.net


김성호 고문은 동아시아에서의 농지 및 토지개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대만·한국 등 자유민주의 경제권에서의 농지개혁과 공산권인 중국·북한의 무산자 혁명으로 이루어진 나라의 토지개혁으로 대별된다며 이들 국가의 진행과정을 설명했다.

'농지개혁사연구'서를 집필하면서 6·25전쟁 또는 군사정부 시절에 거의 사라져버린 농지개혁과 관련한 자료를 발굴하기 위해 전국을 누비면서 남한의 농지개혁자료는 물론 북한의 토지개혁과 관련한 자료를 발굴하기도 했다는 김 고문은 이와 관련해 우리의 기록문화 보존 경시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김 고문은 농지개혁 자료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발품을 팔던 중 충남 서산군 근흥면에 관련 자료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당시 면장인 이완순(李完純)씨를 만나자 불과 몇 페이지에 불과한 거의 닳아진 농지개혁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었는데, 5·16 직후 군인들이 면사무소 서류를 뒤지며 불온하다고 판단되는 자료들을 운동장에 내다놓고 불태웠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자료가 중요한 자료로 생각한 이 면장이 면서기를 시켜 빼내 집 부엌 아궁이에 숨겨놓았었다며 그 자료를 확인해 보니 귀속농지를 포함해 분배농지, 지주두매, 잔존소작, 호별, 일가별 분배표 등이 들어 있었다며, 특히 여기에 이 대통령께서 "춘궁기가 촉박함으로 추진상 곤란한 점이 유할 것이나 농지개혁을 적극 반영하라"고 씌어 있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또 부산 피란 정부 시절에는 윤영선 장관에게 "공산당을 막으려면 농지개혁부터 빨리 해"하고 강조를 많이 했다고 윤 전 장관의 증언을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에 의해 '농지개혁에 대한 임시조치법'을 발해 ▲지가증권의 거래 허용(2인 연대보증이면 반액지원), ▲피난지주의 생계지원, 공산당 선동 잠재울 것(농지개혁), 그리고 군량미 확보 등이 담기게 했다고 말했다.

▲ 강영훈 이 박사 기념사업회 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강연내용을 경청하고 있다. ⓒkonas.net


김 고문은 북한의 토지개혁과 관련해서는 강원도 철원군에서 관련 자료를 발굴했다면서, 특히 부락별 1점당 평균면적에 대해 △동송면 오덕1리는 1300평을, △오덕2리 800평 △철원읍 흥원리는 1500평으로 각각 차이가 있었다고 했다.

또 북한이 토지개혁을 할 당시 철원 주민들의 반응을 확인했는데, "토지를 거저 얻고 보니 김일성 만세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농민들은 토지를 분여한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절대 사수함에 의해 확고부동한 정권이 확립되었다"고 말하고 무상분배 실상과 관련한 허구성도 강조했다.

즉「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토지법」(1977.4.29)제2조로 "토지개혁과 농업협동과 방법이 철저하게 수행되어.... 사회주의적 토지소유관계가 전면적으로 확립되었다"고 하여 농협이 일괄 관리하던 사유토지를 일괄 국유화했다. 무상분배란 농민을 기만한 권력 장악수단이었다고 말했다.

이 날 강연회에는 강영훈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회장과 이인수 이 박사 양자를 비롯한 200여명이 정동제일교회 아펜셀러 홀을 가득 채웠으며, 강연 중에는 충남 서산군 근흥면에서 살아 이완순 면장의 자료와 관련한 내용을 알고 있다고 즉석에서 증언하는 우연의 일치가 보여지는 모습도 있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
holeekva@hanmail.net)


[코나스
http://www.konas.net/2009.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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