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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행동본부 ‘거짓·조작판결규탄 기자회견’, “그대들의 조국은 어디인가?”

no1tv 2011. 1. 26. 00:19

[PHOTO NEWS]

국민행동본부,
‘거짓·조작판결규탄 긴급기자회견’






























이상천 리포터(촬영) house@paran.com

◆ 거짓·조작 판결 규탄 긴급 기자회견

일시: 2011년 1월25일(火) 오전 11시
장소: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주최: 국민행동본부(02-527-4515~6, http://www.nac.or.kr/)
사회: 신혜식(독립신문 대표)

<진행 순서>

국민의례
내빈소개
인사말 ...........................................................서정갑(국민행동본부 본부장)
경과보고.........................................................신혜식(독립신문 대표)
규탄사...............................................,,...........양영태(자유언론인협회 회장)
최인식(국민행동본부 前사무총장)
규탄 성명(결의)...............................................봉태홍(라이트코리아대표)
질의응답



























국민행동본부 ‘거짓·조작 판결 규탄 긴급 기자회견’

-“10․4 국민대회는 친북 좌익 정권의 국가보안법 폐지 책동을 저지한 의거였다”
-“집회 3년 후 이뤄진 검찰 기소는 애국 인사에 대한 표적수사”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 “항소심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하겠다”


2011년 1월25일 오전 11시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국민행동본부 주최로 ‘거짓․조작 판결 규탄 긴급기자회견’이 열렸다. 徐貞甲(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 등은 2011년 1월20일 항소심 재판부가 ‘10․4 국가보안법 死守(사수) 국민대회(이하 국민대회)’에서 폭력시위를 방조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로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데 항의했다. 徐본부장은 “10․4 국민대회는 친북 좌익 정권의 국가보안법 폐지 책동을 저지한 의거였다. 집회 3년 후 이뤄진 검찰의 기소는 反(반)좌익․호국투쟁에 앞장서 온 애국 인사에 대한 표적수사”라고 주장했다. 서정갑 본부장은 이번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할 예정이다.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국민대회)행사 종료 후 경찰 호위 속에 청와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로 예정했던 약속을 경찰 측이 어겼다”는 徐貞甲 본부장 측 주장에 대해 “경찰과 그러한 약속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국민행동본부는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던) S모 경위의 휴대폰 통화내역조차 왜 확인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집회 당시 경찰은 ‘평화행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60~70대 노인을 포함한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방패와 워커로 가격했다. 그로 인해 참석자 일부는 인근 병원에 호송되기도 했다. 국민행동본부는 “노인을 상대로 방패를 직고 물대포를 쏜 (당시 경찰의) 폭행과 폭력은 무엇인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국민행동본부는 검찰에게 “왜 노무현 前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은 수사도 하지 않는가? 수사 자료는 왜 공개하지 않느냐”며 “좌경세력을 편들고 애국세력을 탄압하는 게 검찰의 임무인가”라고 비판했다.

국민행동본부는 “우리는 진실과 헌법의 힘으로 애국을 탄압하고 반역을 감싸는 판검사들을 응징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당시 검찰은 국민대회 수사과정에서 徐 본부장에 대한 犯法(범법) 여부를 문제 삼지 않았었다. 그러나 사건 발생 3년 여 만인 2007년 7월 ‘李모 등 경찰관 7명이 전치 2주가량 피해를 입었고, 경찰버스 백미러가 파손됐다’는 이유로 徐 본부장을 기소했다. 결국 2008년 1심에서 징역 1년8월·집행유예 2년(검찰구형 징역 2년)을 선고 받았으며 유죄판결을 받은 서 본부장 등은 이에 반발, 항소했다. 1심 재판부(한양석 부장판사)는 검찰에서 10년을 구형받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에게는 무죄판결을 내린 적이 있어 이념 편향과 형평성 논란이 제기됐었다.

◆ 10․4 국가보안법 死守(사수) 국민대회란?

2004년 10월4일 反核反金국민협의회가 주최한 국민집회. 이날 오후 3시 시청 앞에는 평일 오후라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3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운집했다. 집회에는 강영훈, 현승종 前 국무총리, 6․25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과 채명신 前 駐越한국군 총사령관, 금란교회 김홍동 목사등 우파 인사들이 연단에 섰고, 재향군인회, 자유총연맹, 해병전우회, 한국기독교총연합 350여개 우파 단체들이 집결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을 폐기하고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는 것이 좋다”(2004년 9월5일)며 강행하려던 국보법 폐지가 이 대회에 의해서 좌절되었다. 검찰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준 것이다.
집회 참석자들은 노무현 정권을 親北反美 정권으로 규정하고 국보법 사수의 결의를 다졌다. 이들이 집회를 마치고 태극기를 앞세워 청와대로 행진하려 하자, 경찰은 물대포와 진압용 방패를 앞세워 이들을 물리적으로 진압했다.
독립신문 신혜식 대표, 자유넷 봉태홍 대표, 무한전진 류현태 대표 등 수 백명의 우파 인사들이 이날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고, 신 대표는 이 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국민행동본부 성명서 全文)

헌법을 사수한 愛國者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사, 그대들의 조국은 어디인가 ?

2004년 10·4 국민대회는 친북좌익정권의 국가보안법 폐지 책동을 저지한 의거였다 !

2011년 1월20일 徐貞甲 국민행동본부장등이 서울고법 형사5부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2004년 10월4일 국가보안법死守국민대회에서 폭력 시위를 방조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로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한마디로 엉터리 기소를 기초로 한 엉터리 판결이다. 재판장은 徐본부장에 대한 징역형 선고의 근거로 “2004 국민대회는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정치적 입장에 근거하여 목적을 관철한 暴力的(폭력적) 집회였음”을 들었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 재판장은 이날 집회를 다룬 기사도 보지 못했나 ? “10만여명이 참가했지만 불상사는 없었다”는 조선·동아일보 등 주요 일간지 보도는 거짓이었나 ?

10·4국민대회는 평화집회였다. 오히려 집회당시 경찰은 ‘평화행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깬 채 대부분 60~70대 노인인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방패와 워커로 가격했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고 피해자들은 인근 병원에 호송됐다.

갑작스러운 경찰의 일방적 폭력행사에 몇몇 시민이 항의해 피켓, 물통, 깃발을 던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주최 측 통제에서 벗어난 우발적 항의 몇 건을 가지고 10·4국민대회를 폭력집회로 모는 건 어불성설이다.

재판장에게 묻는다. 무슨 폭행, 무슨 폭력을 말하나 ? 노인을 상대로 방패를 들어 찍고 물대포를 쏜 폭행과 폭력 말고 무엇이 있었단 말인가 ? 청와대 지시를 ‘성실히’ 이행한 경찰의 폭행과 폭력 말고 다른 것이 있었단 말인가 ?

反좌익·호국투쟁에 앞장서 온 徐본부장에 대한 표적수사였다. 정권이 바뀐 뒤에도 2008년 4월 검찰은 徐본부장 등에게 징역2년을 구형했고 판사 역시 좌익정권이 끼워 맞춘 날조된 공소장을 근거로 징역 1년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었다.

항소심에서 재판장은 또 “행사 종료 후 경찰 호위 속에 청와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로 예정됐던 약속을 경찰 측이 어겼다”는 徐본부장 측 주장에 대해 “경찰과 그러한 약속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문제의 약속에 대해 증언한 당시 서울경찰청 정보담당 S모 경위의 통화내역을 확인이나 해보았나 ?

우리는 검찰에 질문한다. 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은 수사도 하지 않는가 ? 왜 국가 예산으로 수사를 했으면서 수사자료도 공개하지 않는가 ? 좌경세력을 편들고 애국세력을 탄압하는 게 대한민국 검찰의 임무인가 ?

2004년 10·4 국민대회는 친북좌익정권의 국가보안법 폐지 책동을 저지한 의거였다. 이 의거의 공로자를 죄인으로 몬 검사와 판사는 대한민국에서 활동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진실과 헌법의 힘으로 애국을 탄압하고 반역을 감싸는 검사와 판사들을 반드시 응징할 것이다. 당신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2011년 1월 25일

국민행동본부



이상천 리포터(촬영) house@paran.com

[2011. 1.25일 http://blog.paran.com/par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