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욱 칼럼] 어느 애국자의 무덤
어느 애국자의 무덤
황윤길의 무덤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전쟁에 대비하지 않으면 전쟁을 면할 수 없다는 귀한 가르침.
소위 무비유환(無備有患)의 교훈.
임진왜란은 무방비가 불러 온 민족사 최대의 참화였다. 당시 조선은 당쟁으로 인해 지배계급의 정치기강이 해이해 있었으므로 왜의 침략을 막기 위한 대비책을 제대로 세울 수가 없었고 병기마저 녹슬고 있었다.
조선은 임진왜란 전인 1590년 3월 6일 일본의 내정을 알아보기 위해 정사에 서인 황윤길, 부사에 동인 김성일로 하는 조선통신사 일행을 일본에 파견했다. 이들은 이듬해 1월 28일 귀국해 국왕 선조를 모신 자리에서 일본에서의 활동 결과를 보고했다. 정사 황윤길은 “반드시 왜의 침략이 있을 것입니다. 히데요시의 두 눈에서 이상한 빛이 나고 담력도 있어 보였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부사 김성일은 “신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히데요시의 눈이 쥐새끼의 것과 같으니 조금도 겁낼 것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황윤길은 침략준비의 증거물로 조총 두 자루를 제시하면서 왜의 침략을 정확히 예고하고 대비책을 강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선조는 김성일의 보고가 옳다고 하면서 통정대부(정3품 당상관)라는 관직을 제수하고 그의 허위보고를 받아들여 ‘왜의 침략은 없다’라고 결정했다. 그 뒤 조선은 왜의 침략으로 6년 7개월 동안 온 강토가 왜군의 더러운 군화에 무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선조는 왜 부사의 거짓 보고를 받아들였는가? 그 마인드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미리 ‘유비무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평시를 막론하고 확실하게 제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기본자세가 먼저 전제돼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세가 전제될 때 비로소 예상되는 외침에 대비해 사전에 성을 쌓고 비상훈련을 하면서 군량미도 모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는 가능성 여부와는 관계없이 우선 “외침이 없을 것이다”라는 보고가 딱 마음에 드는 것이다.
여기에다 정치적 당파의 이해관계가 끼어들게 되면 나라의 안보는 더욱 어렵게 된다. 당시 여당인 동인의 세력이 우세했기 때문에 국가안위에 관한 중대한 문제를 두고 ‘왜의 침입이 없는 것’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해에 실제로 왜군이 침입해 오자 선조는 황윤길의 보고를 받아들이지 못한 데 대해 크게 후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 후 황윤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언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기록이 없다. ‘쓸데없는 말’을 해서 민심을 불안하게 한다고 생각한 실세 동인들이 그를 암살해 버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최근에 그의 후손들에 의해 발견됐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에 있는 모 육군부대 영내에 있다. 부인 안동 김씨와 합장된 황윤길의 묘소에는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오석 재질의 묘비를 비롯해 망주석, 문인석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전쟁에 대비하지 않으면 전쟁을 면할 수 없다는 귀한 가르침이다. 소위 무비유환(無備有患)의 교훈이다.
현재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도 2012년에 ‘강성대국의 완성’을 호언하고 있다. 이러한 때 우리 모두 안보불감증을 극복하고 유비무환의 자세로 국가안보 태세를 확고하게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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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나라사랑운동본부 교수)
[코나스 www.konas.net 201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