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여러 가지로 서로 다른 태도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과 그 결과는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선한 결과가 따라오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줄 뿐이다.
부유하게 잘 살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잘 살게 되리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공상을 하는 것일 뿐이다. 마음먹은 대로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의 마음이 지향하는 그곳 근처에 사람의 삶이 존재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남북한의 관계는 묘하기만 하다. 남북한의 관계는 마치 화성에서 온 남한, 금성에서 온 북한이 가지는 관계와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서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 없이 자기 위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과연 남과 북이 그 지향점이 일치하는 것이 있을까? 그 지향의 차이를 솔직하게 논의하고 그 방향을 진지하게 조율하려고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우리 역사에 있었던 것일까?
경인년 새해를 맞이하여 북한이 새로운 제스쳐를 보내고 있다. 북한은 대한민국의 관광객을 어이없이 죽여 놓고서 사과 한 마디 없이 버티다가 오기를 발동하여 금강산과 개성관광을 모두 차단해 버렸다. 그러다 이제 와서 그 관광의 재개를 위하여 대호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대하여 군사적으로 위협하면서 경제적인 봉으로 간주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대놓고 대한민국 정부를 모욕하고 겉으로 큰소리 쳤다. 그리고 뒤로는 돈을 받으며 마지못해 대한민국과의 대화에 응하는 척 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는 북한만의 잘못이 아니다. 지난 정권 10년동안 북한과의 대화에 목을 매다시피한 대한민국 정부의 잘못이기도 한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간에 그러던 북한이 지금까지의 태도에서 변하여 대한민국과의 대화 재개를 요청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를 원한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북한측의 상황이 그 같은 변화를 불가피하게 할 만큼의 조건이 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북한에서는 지금 몇몇 가지 상황에서 심각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첫 번째로 김정일의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시급하게 후계구도를 정착시킬 필요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 상황이 간단하지 않다. 가장 바람직한 상황은 김정일이 국무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 후계자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구축하여 주는 것인데 그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 후계자로 거론되는 김정은은 너무 나이가 어리다. 이제 20대인 그는 후계자 수업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안전하게 후계자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이와 같이 긴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통치체제가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은 거의 바닥이 나있다. 핵무기와 미사일을 둘러싼 문제로 지금 북한은 국제사회의 통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태까지 비정상적인 방법에 의지하여 자금을 조달하여 오던 북한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해외에 가지고 있던 금융자산도 동결되어 잇고 무기거래 등의 방법도 제동이 걸리는 등 북한은 지금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 중 하나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로 북한이 2009년 말에 실시한 화폐개혁과 그 후속적인 조처를 보면 북한이 거의 이성을 상실한 상황에서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북한은 인민들의 재산을 몰수하다시피 하여 거의 모든 부를 다시 국가의 수중에 넣었다. 북한이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인 외화의 문제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공포정치를 통하여 그 유통을 중지시키고 색출하는 대로 그 외화마저 다시 몰수하기 위한 조처들을 실시하고 있다.
그것은 당연히 북한사회에서 소위 금융의 경색현상을 가져올 것이고 그를 통하여 북한에서는 다시금 시장경제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문제는 그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화폐가 돌지 않으므로 인플레는 심해질 것이고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물품을 북한은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상실하였기 때문에 북한의 경제는 큰 타격을 입고 국가적인 기능마저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고 한다면 왜 북한이 그토록 무시하던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하여 금강산과 개성관광을 재개하고자 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북한관광을 통하여 북한정권에 들어가는 자금은 그야말로 천수답에 비가 내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북한정권을 연명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은 남한정부가 비교적 손쉽게 상대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남한사회에는 친북적 조직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북한이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한다면 남한정부는 아주 쉽게 응해줄 것이라는 선입견을 북한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의 남북한 관계의 현주소이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측의 이같이 절박한 상황에 부응하여 대한민국이 쉽게 북한의 요청을 들어준다면 그것은 타당한 일일까? 그것은 현재 북한의 요청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제대로 이해할 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도탄에 빠진 인민경제를 조금이라도 회생시킨다는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적극적으로 북한의 요청에 응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선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북한의 인민들을 살릴 수 있고 북한 인민의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어쩔 것인가? 관광재개를 통하여 북한으로 흘러들어가는 자금이 이미 경제적으로 거덜이 난 북한의 인민들을 탄압하고 총살시키기 위하여 사용하는 무력시위용의 자금이 된다고 한다면 어쩔 것인가? 그 자금의 용처가 결국은 그 같은 탄압을 통하여 김정일 후계체제를 공고히 하여 오로지 그 탄압만을 강화시키는데 기여한다고 하면 어쩔 것인가? 그 자금의 용처에 대하여 우리는 묻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북한의 인권유린이 심각한 상황이 되어도 비겁하게 항상 거기에 대해 발언하지 못했던 과거와 같이, 북한의 정권이 인민들을 도륙하여도 그 정권에 자금을 대주면서 우리의 양심을 떳떳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와 번영에 기초하여 선진한국을 만들고자 한다.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굳게 지키면서 국민소득 4만 불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금융위기를 통하여 오히려 강력하여진 경쟁력 있는 기업을 선두로 하여 세계시장에 새롭게 진출한 원자력 발전 등 새로운 사업들을 더하면서 대한민국은 세계경제의 선두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려 한다. 이같은 발걸음에 우리는 당연히 북한을 동참시키도록 하여야 한다. 그것은 대다수의 염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의 동참이 의미하는 것이 북한인민을 도륙하는 정권을 지지하고 그 도륙을 수수방관한다는 것으로 결말이 나서는 안 된다. 또한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의 위협하에 언제나 굽실거리면서 조공 바치듯 통치자금을 대주는 그 같은 결과로 결말이 나게 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북한을 상대함에 있어서 한시라도 근본적인 원칙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인민들은 인도적인 지원을 받아야 하며, 북한 인민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하며, 대한민국은 북한 인민의 지지를 받는 북한정권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정부가 이러한 원칙을 굳게 지키는 선에서 북한을 상대하여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원칙을 저버리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월간자유 2월호)
권희영(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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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스 www.konas.net 20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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