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장성근 |
중국 조선족이 북한 주민들과 함께 했던 과거 이야기를 회상하며 쓴 글이다. 비록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당과 수령에게 충실했던 북한 주민들의 순진했던 삶이 그대로 묻어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지만 식량사정이 좋았던 시기에 북한에서는 해마다 여름이면 상류에서 벌목한 목재를 뗏목으로 묶어서 두만강에 띄워 무산까지 운송했다.
당시 촌에서 대장 직책을 맡고 있던 나는 날씨가 무더운 어느 여름날 오전 밭일을 마치고 더위도 식힐 겸 두만강 가에 나가 수영을 하고 있는데 위쪽에서 뗏목들이 떠내려 오는 것이 보였다.
뗏목이 떠내려 올 때면 마을의 아이들이 늘 하는 장난은 뗏목을 운전하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거나 뗏목에 매달려 아래로 내려가는 것인데, 아이들이 많이 나온 그 날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뗏목이 아이들과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자 여기저기에서 뗏목을 운전하는 사람과 말시비를 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오고, 뗏목을 운전하는 사람들도 적당히 아이들의 시비를 받아주면서 이야기가 오고가는 가운데 아래쪽에서 수영을 하던 여자애 두 명이 불현듯 소리쳤다.
“어이 아바이, 당신네 존경하는 ‘김 배때(복부의 비속어)’는 잘 있는겨?”
여자아이들의 이야기에 분노한 뗏목 운전을 하던 아바이는 고함을 질렀다.
“야 이년들아! 너희들은 애비 애미도 없냐? 어찌 같은 조선민족으로서 위대한 민족의 태양 수령님께 그런 방탕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로서 여자아이들과 뗏목을 운전하던 아바이의 고함들이 오고 갔고, 나를 포함한 수영하러 나온 사람들이 좋은 구경거리라도 만난 듯 구경에만 열중하던 가운데 뗏목은 물살을 타고 서서히 아래쪽으로 떠내려가면서 여자 아이들과의 거리가 멀어졌으며, 이들의 고함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3일 뒤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발생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마을 촌민이 남루한 옷차림의 낯선 사람을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저기 조선에서 넘어온 뗏목 반장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나는 3일 전의 사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의 소개를 마친 뗏목 반장은 나를 찾아온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이야기를 하며 ‘위대한 태양 수령님’을 모욕한 그 처녀아이들을 찾아가서 혼내 주겠다는 것이다.
당시의 일에 대해 모든 것을 구경거리로 하며 목격한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고, 그날 아이들을 말렸다면 일이 이와 같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을 대장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재미있다고 구경만 했던 내가 너무도 한심하다는 생각과 함께 후회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이 한 일이니 너무 노여워하지 말게.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내가 아이들을 잘 타이르겠네”
나는 위로와 함께 같은 민족으로서 국경을 넘어온 외국손님 접대에 소홀이 하면 안 될 것 같아 그를 모시고 집으로 갔다.
집에서 안해(집사람)가 차려주는 술상 앞에 마주 앉아서야 나는 비로소 뗏목을 운반하는 사람들은 중도에 뗏목이 고장이 나는 특별 상황에 근거해서 국경에서 4km 이내를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뗏목반장에게 “나중에 꼭 위대한 태양 수령님을 모욕한 민족의 철없는 웬쑤 에미나이들을 혼내 주겠다”는 약속을 몇 번이고 한 가운데 비로소 술잔이 오고 갔고, 많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위대한 태양 수령님’에 대한 한결같은 충성심으로 ‘민족의 철부지 웬쑤’들을 혼내려고 국경을 넘어왔던 뗏목 반장은 술에 만취가 되어 끝끝내 내가 부축해서 두만강을 넘겨 보냈다.
지금도 당시의 일을 회상하며 식량난의 어려움으로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3국을 거쳐 한국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수령과 당에 충실했던 세상에 둘도 없는 백성을 가진 북한을 오늘날 빈곤과 굶음이 가득한 지경으로 이끌어 온 북한의 지도층과 ‘친애하는 김정일’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탈북자 장성근
[구국기도 http://www.korea318.com/ 20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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