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모'와의 심야 인터뷰]
“노무현 찍고 후회, 박사모 만들었다”

정광용 회장 “박근혜 매니아 4개월 만에 2만명 모였다”… 노사모는 훌륭한 경쟁 상대
지난 8월 6일 밤 10시 무렵, 서울 강남역 인근 유흥가 뒷골목. ‘삼계탕’과 ‘PC방’ 간판이 걸려있는 허름한 건물 4층의 한 사무실에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다른 사람들이 귀가를 서두를 시간에 이들은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홈페이지를 이렇게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내일 발대식에 가져갈 물건들은 다 준비됐나요.” “나라사랑님, 차 좀 빼 달래요~.”
4~5평 남짓한 사무실 안은 후텁지근한 열기 속에 왁자지껄하다. 10명 가량되는 사람들은 컴퓨터 화면 주위에 모여, 혹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뭔가를 진지하게 상의하고 있었다.
“요즘은 거의 매일 밤 이렇게들 모입니다. 여기서 밤을 새고 직장에 바로 출근하는 사람도 있어요. 카페도 관리하고, 정치 토론도 하다 보면 날이 금방 샙니다.”
이날 사무실에 모인 사람들의 리더인 정광용(46·ID명 나라사랑)씨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 “거의 매니아 수준”이라고 평했다. 정씨는 지난 3월 말 결성된 ‘박사모’(http://cafe.daum.net/parkgunhye) 회장. 다시 말해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리더이고, 주변의 동료들은 그와 함께 ‘박사모’를 이끄는 운영진이다.
직업 없으면 운영진 참여 안돼
‘박사모’는 지난 대선 기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이끈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못지 않은 적극성으로 요즘 주목을 받는 정치인 팬 클럽. 결성된 지 불과 4개월여 만에 회원 수가 1만9000명을 돌파했고, 최근 거리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정광용 회장은 “우리가 활동하는 ‘다음’의 정치 카페 중 회원 증가율은 1위이고 히트수, 회원들의 글 올리는 수와 자퇴율 등을 감안한 평가에서도 최근 다음 정치 카페 중 1위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노사모 회원이 10만명이라는데 우리도 연말에는 10만명 회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의욕을 보였다.
정광용 회장은 박사모의 초대 회장이자 창설자. 지난 3월 30일 다음 카페에다 ‘자기 고백’을 한 것이 ‘박사모’ 탄생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당시 제가 ‘죽을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지난 대선 때 저는 사실 노무현 후보를 찍었습니다. 이회창 후보가 아들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는 의혹이 너무 싫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보니 그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인 김대업이 유죄 판결을 받데요. 결국 김대업의 사기에 넘어갔다는 자책감이 생각을 바꾸게 했습니다.”

그는 ‘노무현을 버리고 박근혜를 택한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새롭게 택했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지난 총선 기간 박 대표가 보여준 ‘능력’과 그 이후의 정치적 성향이 ‘조국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유신시대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역시 ‘박근혜 매니아’다운 얘기를 한다.
“저도 유신시대에 고등학교ㆍ대학교를 다니며 돌도 던지고 했습니다. 유신은 독재가 맞습니다. 하지만 겪고나서 보니까 우리가 아시아의 4마리 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유신시대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신시대는 3만명을 눌러 3000만명이 살았지만 지금은 3000만명을 눌러 3만명만 살고 있다’는 비유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유신시대가 결국 박근혜의 발목을 잡지 않겠느냐’ ‘한나라당에 박근혜보다 더 나은 후보가 나오면 어쩌겠느냐’며 ‘박근혜 회의론’을 계속 제기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우리는 박근혜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입니다. 한나라당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후보는 고려 대상이 아니고 이것이 우리들의 신념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그는 정치꾼도, 거꾸로 구호만을 좇는 학생도 아니다. 처와 세 아이를 둔 평범한 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경북이 고향인 그는 부산에서 초ㆍ중ㆍ고를 나왔고 마산의 한 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그리고 CF 감독 등 영상 관계 일을 했고 지금은 영화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무실도 제가 CF 관계 일을 하던 곳인데 사무실을 옮기면서 ‘박사모’ 아지트로 쓰기로 했습니다. 물론 ‘박사모’가 세는 내지요. 인터뷰 도중 제가 전화를 두 통이나 받았잖아요. 다 집에서 ‘언제 오냐’고 걸려온 전화입니다. 아내는 처음에는 내 돈 쓰면서 ‘박사모’ 때문에 집에도 안들어오고 하니까 불만이더니 지금은 이해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큰 아들은 학교에서 아빠 자랑까지 하고요.”

정치권 진출하면 회원 탈퇴해야

그는 자신의 예를 들면서 ‘박사모’의 특징 중 하나가 ‘생업(生業) 중시’라고 강조했다. ‘직업적 운동가’들이 아니라 ‘건전한 직장인’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여기 모인 분들도 다 번듯한 직장이 있는 분들입니다. 다들 ID로 호칭하면서 이름이나 신분 밝히기를 꺼리지만 제가 알기에 저 분은 교수, 저 분은 의사입니다. 운영진이 되려면 확실한 직업이 없으면 안된다는 게 규칙입니다.”
정 회장은 “운영진이나 지역장, 카페장 등 박사모 간부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도록 회칙에 정해놓았다”며 “이 약속을 어길 경우 민ㆍ형사상 고발이나 낙선운동을 감수하겠다는 약속까지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이 한창 일하는 운영진 한 사람을 소개한다. 남편과 아이를 둔 회계 담당 ‘근혜119’(ID명ㆍ48)다. 맞벌이 부부로 직장인이기도 한 ‘근혜 119’는 “박사모 일을 보느라 가정생활을 많이 희생하지만 남편도 박사모 회원이기 때문에 이해한다”며 “회사 일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휴가일을 박사모 시위날에 맞췄다”고 말했다. 그는 “시위에 처음 나가보는 것이라 긴장된다”고도 했다.
박사모 회원들은 8월 9일 처음으로 거리로 나섰다. 이날 오후 서울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앞에서 ‘노무현 정권 실정 규탄대회 및 민보위ㆍ의문사위 역사 날조 규탄대회’를 열었다. “다들 직장이 있고 가정이 있는 사람들인데 시위를 좋아하겠습니까. 하지만 김재규를 민주화 열사로 만들려는 듯한 현 정권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운영진이 지난 5ㆍ18 행사 때 광주에 내려가 참배를 드리기도 했는데 그건 민주화에 대한 모독입니다.”
정 회장은 “우리는 시위를 좋아하지 않지만 현정권에 선전포고 경고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8ㆍ15 때까지 노 대통령이든 여당의 책임있는 사람들이 나서 국가 정체성 문제에 대해 확실한 언급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박사모에는 10명의 운영진이 정책, 홍보, 회계, 기획, 게시판 관리, 지역 등을 담당하고 있고 각 지역 모임을 이끄는 지역장들이 따로 있다. 운영진은 공지 사항을 빼고는 게시판에 글을 올리지 않는 게 원칙이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 여론을 주도하면서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운영진은 컴퓨터 화면을 보여주면서 ‘박사모’ 카페 현황을 설명해 주기도 했다. “보통 하루 카페 방문객 1500여명에, 게시판 새 글이 1500여개, 신규회원이 300여명인데 최근 박사모가 매스컴을 타면서 오늘 하루만 2700여명의 신규회원이 가입했습니다. 방문객 수도 3만8000여명에, 새 글이 3100여개가 올라오는 등 폭발적 인기입니다.” 박사모에는 최근 LA나 베이징, 도쿄 등에 해외 지역모임도 생겼다고 한다.
‘박사모’는 따로 회비를 받지 않고 자발적인 찬조금만으로 운영비를 모으고 있는데 지금까지 650만원을 모았다고 한다. 지금은 ‘다음’에 세 들어 살고 있지만 연말쯤 운영비가 더 모이면 노사모처럼 자체 사이트를 운영하는 게 목표다. 돈 관리만큼은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투명하게 한다”는 것이 운영진의 자랑. 돈의 입출금 내역이 담긴 통장을 스캔해서 사이트에 올리고 있고, 운영진이 쓴 영수증까지 일일이 스캔해서 회원들에게 공개한다고 한다.
1만9000명에 이르는 박사모 회원들을 연령별로 분류하면 20대, 30대, 40대가 각각 20% 정도로 엇비슷하다는 게 운영진의 설명이다. 20대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하면 질시를 받는 분위기지만 “숨어있는 20대 지지자들이 많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운영진 중 20대에 속하는 ‘박사모’ 대변인 ‘똘비누나’(26)는 “노무현 정권 탄생 이후 죽 박 대표를 지켜봐왔는데 일반 국회의원보다 언행일치 측면이 강한 것 같다”며 “20대는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을 가장 싫어하는 세대인데 그런 면에서 박 대표는 이상적인 지도자로 본다”고 말했다. 직업이 건축 설계사인 ‘똘비누나’는 ‘박사모’의 ‘얼짱’으로도 유명하다. 얼마전 박근혜 대표가 가수 이승철씨 콘서트에 참가했을 때 바로 옆에 앉아있다가 카메라에 잡히는 바람에 유명인사가 됐다고 한다. 그가 ‘박사모’라는 것을 모르고 있던 친지나 회사 동료들로부터 “괜찮겠느냐”는 염려를 받을 정도로 ‘열성 회원’이라고 한다.
“우리를 거리로 내몰지 말라”
신예 정치인 팬 클럽인 ‘박사모’가 대통령까지 탄생시킨 저력의 ‘노사모’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이들은 노사모에 대해 ‘훌륭한 경쟁 상대’라고 치켜세웠다.
“대통령 임기가 3년5개월 남았는데 그 기간 중 노사모가 계속 활약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가 강한 게 우리한테도 좋지 않습니까. 한번 제대로 된 경쟁을 하고 싶습니다.”
정 회장은 최근 모 언론인을 통해 노사모 측에 한 가지 제안도 했다고 한다. 서로 ‘다른 정치’를 꿈꾸지만 함께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으로서 화합을 다질 계기를 마련하자는 내용이었다. 예컨대 박사모와 노사모 회원들이 전국을 돌며 ‘개떼 축구’라도 하자는 것이다.
정 회장은 ‘노사모’의 장단점을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대통령을 만들어낸 조직력을 높이 평가한다”며 “하지만 잘못하는 게 있으면 제대로 비판하는 게 ‘사랑’이라고 보는데 그게 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운영진은 “노사모는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라 노사모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를 안심시키면서 생업에 열중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날 밤 만난 ‘박사모’ 운영진은 “우리는 사랑을 모토로 모인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노사모’는 지금] 회원 10만에 상근·전국 조직

정부 정책 반해 이라크 파병 반대 주장도
‘박사모’가 뜨면서 ‘노사모’는 요즘 언론에 덩달아 조명을 받고 있다. 원조 정치인 팬 클럽으로서 ‘박사모’와 비교되는 기사들이 자주 나온다.
현재 ‘노사모’는 회원수 10만여명으로 회원 수 2만명도 못되는 ‘박사모’와 규모면에서 비할 바가 아니다. 2000년 6월 출범한 노사모는 서울 중앙 모임 아래 도ㆍ시ㆍ군별 하위 조직도 갖추고 있고 상임운영위원과 상근자로 구성된 사무국도 있다. 또 동호회 및 소모임도 많다. 이런 체계적인 조직을 바탕으로 노사모는 지난 대선 ‘희망돼지 분양 운동’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는 조직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라는 당초 목표를 달성한 상태에서 활력이 예전 같지 못하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원조 노사모’라고 밝힌 장호원씨는 최근 노사모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노사모에 가입했었다”며 “이제 노사모는 해체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정부 정책에 반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를 놓고 ‘명분 없는 전쟁’을 반대하는 회원들이 정부ㆍ여당의 파병 방침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노사모’는 최근 들어 ‘친일청산’을 중요한 이슈로 제기하고 있다. 홈페이지(www.nosamo.org)에 들어가면 ‘개혁 네티즌 친일청산 안티조선 확산 국토순례 마라톤 대회’라는 선전 페이지가 크게 뜬다. ‘노사모’ 회원들은 지난 7월 25일 광주에서 출발, 전국을 돌다가 8월 15일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끝나는 친일청산 마라톤 대회를 벌이고 있다.
정장열 주간조선 기자(jrchung@chosun.com)
[주간조선 2004.08.20]


Posted by no1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