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세광 최후진술 “나는 바보였다”
74년 8월15일 이후 갓난 애 이름을 ‘문세광’으로 짓는 부모는 거의 없다.
정부가 공개한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문서에서는 문세광(당시 23)을 고교 시절 공산주의 사상에 빠진 ‘골수 빨갱이’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문세광이 ‘남한에서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해서 인민봉기의 기폭제로 삼아야 한다’는 재일조선인총연맹(총련)의 선동에 넘어가 박 대통령 저격을 결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고교 시절 <공산당선언> <김일성선집> 등을 읽으며 ‘전세계 공산주의화’를 꿈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그는 1972년 9월 총련 오사카 이쿠노니시 지부 정치부장 김호룡(47)씨에게 ‘포섭’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문세광의 실제 삶의 흔적을 들여다 보면 ‘혁명 전사’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는 1951년 일본 오사카에서 석면제품제조업 종사 집안의 4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직업병으로 66년에 사망했으며 74년 저격사건 당시엔 부인 강모씨와 1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세이끼 상고 3년때 자퇴한 그는 오사카 재일한국인거류민단(민단) 이쿠노 기타 지부에 가입해 민단 단비 수금원을 시작으로 플라스틱 공장 노동자, 휴지 수집상, 빌딩 유리 청소부 등을 했다. 그러나 정부 문서는 그가 민단 분열을 꾀하려고 일부러 총련 단체에서 활동하지 않고 민단에 가입하고 민단계열의 재일한국청년동맹 등의 단체에 가입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가 옥중에서 일본에 있는 처에게 보낸 편지에는 아내와 아들에 대한 애틋한 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형되는 날 입회했던 이들이 전한 그의 마지막 말은 “와다시와 바가데시다(나는 바보였습니다)”였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한겨레 www.hani.co.kr 2005.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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