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제대로 검증받은 대통령이 필요하다"
[특별인터뷰 ] 김태호 경남지사

‘42세 도지사’. 6·5 재보선에서 전국 최연소 광역단체장으로 선출된 김태호(金台鎬) 경남지사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중앙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는 한나라당에서 차기 기대주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40대 돌풍을 일으킨 원희룡 최고위원과 함께 차기 대선에서 박근혜 대표의 대타로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인구 300만, 예산 8조원의 경남도를 이끌고 있는 김 지사를 만나 도정에 대한 포부와 정치적 야심, 인간적인 면모를 더듬어봤다. 김 지사와의 인터뷰는 7월 23일 오후 창원 도청 지사실에서 있었다.
- 선거가 끝난 지 두 달 정도 됐는데 업무 파악은 끝났습니까.
“업무 파악 대략하고 안정화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도의원 4년의 경험이 있어 큰 틀과 흐름에서 업무 파악에 별 문제가 없습니다.”
- 경남도 산하 시ㆍ군이 각각 10개나 되는데 좀 다녀봤습니까.
“반 정도 다닌 것 같습니다. 과거엔 순방이란 이름의 프로그램을 짜서 다녔는데 지금은 365일 각계각층 도민들과 청외(廳外)에서 만나 소리를 듣고 그런 것들을 모아 정책이나 현안에 반영해야 합니다.”
- 30대 도의원, 40세에 거창군수를 하고 42세에 도백인데 초고속 성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수치 개념으로 본다면 지당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1년이 과거의 100년을 좌우할 정도로 급변하는 세상입니다. 저는 늘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 역사의 몫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보궐선거가 생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시대의 변화 요구나 한나라당의 변화 측면에서도 잘 맞아떨어진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 인구 300만명이 넘고 예산 8조원, 관할 공무원도 2만명에 가까운 큰 행정을 다루는 게 겁나지 않습니까.
“저는 다리 힘이 아주 좋습니다.(웃음) 지금은 역동적 지도력을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도지사가 경륜만 갖고 앉아서 하는 자리가 아니라 직접 뛰는 자리 아닙니까. 경남이란 상품을 어깨에 메고 세계로 뛰어나가야 합니다. 저는 도지사가 행정관리라기보다 비전을 갖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자리라고 봅니다. 경남 전체로 보면 노장청의 조화를 통해 도민의 통합력을 요구받는 자리입니다.”
도백은 직접 발로 뛰는 자리
- 10년간 경남도를 이끈 김혁규 전 지사의 도정에 대해 어떻게 평가합니까.
“김혁규 지사와는 개인적으로 친형 이상의 막역한 관계였습니다. 김 전 지사가 한 일은 뚜렷하게 장점도 많지만 우리가 한번 반성해봐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고 봅니다. 시장 개척에 앞장선 CEO적 모습, ‘주식회사 경남’의 모습 등은 지금도 요구된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뭐랄까, 전시성ㆍ이벤트성 일을 벌여 도민들로 하여금 공감을 갖지 못하게 한 문제도 있습니다. F-3(포뮬러 3, 국제자동차경주대회) 같은 게 대표적인데 당초의 화려한 기대와 효과에 비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김혁규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버리고 열린우리당을 선택, 지사 재임 중 정치노선을 바꾸고 본인한테 부여된 임무와 진로를 바꿨는데.
“세 번씩 한나라당 이름으로 지사가 됐고 도민들이 도와줬는데 그 분의 철학과 비전이 무엇이든 개인적으로 안타깝습니다. 그게 정치적으로 그 분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 김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떠난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세계 정치사를 봤을 때 자기를 만들어준 당을 버리고 간 사람 중 성공한 사람이 없다. 개인적 영달이 아니라면 당이 망할 때 같이 처절하게 망해야 오히려 미래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씀드렸습니다. 김 전 지사 나름대로의 판단이나 생각이 있었겠지만 정치는 기본적으로 신의가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 지사로서 2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 경남도민을 위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뭡니까.
“요즘 어디를 돌아다녀도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시골 말로 뼈빠지게 자식 공부시켜놓아도 지방대 나오면 들어갈 자리도 없습니다. 먼저 민생이나 서민경제 부문을 달래고 활성화시킬 방법이 급합니다. 경남도민들이 10년, 20년 후를 생각할 때 동력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뚜렷하게 못갖고 있는데 희망에 대한 믿음을 줄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중앙정부도 하기 어려운 ‘청년실업 제로 프로젝트’를 약속했는데 자신 있습니까.
“‘제로 프로젝트’를 내놓았을 때 논란이 있었습니다. 공산주의냐, 사회주의냐는 얘기도 있었고. 하지만 그것은 제 의지입니다. 그 정도로 청년실업 해소 대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겁니다.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인력육성 등 시스템적으로 하나하나 해결할 수 있도록 우리가 고리 역할을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하루 아침에 안되겠지만 그런 것들로부터 시작해 결과적으로 ‘제로’로 갈 수 있다는 의지를 담고자 한 것입니다.”
-‘제로 프로젝트’가 가동됐습니까.
“지난 6월 21일 제가 취임해서 제일 먼저 한 일자리창출특별위원회의 핵심 취지가 바로 청년 실업 해소입니다. 기업인이나 대학 총장 등 전문가들이 모여 답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이제는 현실적 얘기를 할 때입니다. 위원회를 단순히 모양으로만 두는 게 아니라 예산도 반영시키며 최우선 과제로 삼을 생각입니다.”
농촌·농민에 대한 뚜렷한 로드맵 아쉬워
- 경남도민들이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고 했는데 이 문제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딜레마라고 봅니다. 경남도민에게 희망을 찾아주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누가봐도 경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차세대 동력에 대한 비전과 활력을 제시해 주면서 동시에 소외된 사람들을 배려하는 정책을 펼 생각입니다. 도민참여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한데 공무원도 그렇고 도민도 그렇고 서로 신뢰와 믿음이 없으면 안됩니다. 서로 믿음을 쌓아나가는 것이 희망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 거창농고와 서울대 농대를 나왔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실력이 그것밖에 안됐지요.(웃음) 사실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지으려고 했어요. 중학교 때 아버지가 제 주변 친구들하고 함께 일할 방앗간을 차려주겠다고 해서 ‘이제 공부를 안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좋았지요. 참고서를 친구들한테 다 줘버렸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농사를 지어도 농약병에 쓰인 영어는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고등학교는 나오는 게 좋겠다고 하데요.”
- 진짜 방앗간을 하려 했습니까.
“진짜 그래요. 우리집이 3남1녀인데 형이나 누나나 동생이나 다 공부를 저보다 잘 했어요. 아마 부모님이 집안에 농사짓는 놈이 하나쯤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 형이나 누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나요.
“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저도 고등학교에 가니까 이상하게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나보다 공부 못한 놈들도 대학간다고 하고….”
- 농과대학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 당시 서울대라는 것도 작용했고, 택했다기보다 거기에 맞춰간 셈이죠. 저는 일찍부터 다시 촌으로 돌아가 바닥부터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습니다.”
- 우리나라 농촌, 농민 분야에서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봅니까.
“제일 어려운 질문인데…. 전체적으로 보면 국가가 농촌, 농민에 대한 뚜렷한 로드맵이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생산 중심의 농업 정책은 있어도 농민·농촌의 복지와 삶을 위한 정책은 없었습니다. FTA(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되면서 농촌은 여전히 벼랑 끝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농촌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농업도 이제 1차 산업이라고 말하기 힘든 것 아닙니까. 프랑스의 보졸레 누보 처럼 문화와 정서를 가미시킨 농업 상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식품 안전성에 대한 신뢰가 가격을 결정하게 될 것인데 그런 부분이 접목되면 더더욱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수 있는 게 농업입니다.”
- 앞으로 쌀 시장이 개방되면 또 한번 농촌이 엉망이 되고, 정부 재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기본적으로 쌀 개방을 안했으면 하는 게 제 생각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대세도 있으니까 시장이 열렸을 때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둬야 합니다. 보호장치가 없을 때 닥쳐올 사회적 비용보다 보호장치를 갖추는 게 훨씬 더 저렴합니다.”
- 80학번으로 5공 시절에 대학을 다녔는데 암울했던 대학 시절 가장 고민했던 게 뭡니까.
“저는 항상 자식 공부시키려고 피땀흘리고 있는 시골의 부모님들을 생각했습니다.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은 확고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데모대에서 뛰곤 했지만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농촌 문제로 비화되는 지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 이강두 의원 비서관으로 들어간 게 30살 때죠.
“1992년도니까 만 30세죠. 그 전에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단국대·대구대 등 몇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보따리 장사 좀 했습니다.”
-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으로 발길을 돌린 이유가 뭡니까.
“아마 운명 같아요. 이강두 의원이 초대 러시아경제담당공사를 하다 공천을 받게 됐는데 ‘잠깐만 나를 돕다 대학에 다시 들어가라’고 해 선거를 도왔지요. 그런데 금품사건이 터져 이 의원이 희생양으로 (공천이) 날아갔습니다. 그때 제가 선거기획 등 책임있는 자리에 있어 옥중에서 출마하신 분 대신 뛸 수밖에 없었지요. 그때 느낀 게 민심이 얼마나 무섭냐는 것입니다. 여당에서 이 의원 대신 공천한 사람을 포함해 모두 6명이 나섰는데 이 사람들 표를 다 합쳐도 이 의원한테 못미쳤습니다. 그 때부터 도 닦는 마음으로 (정치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걸 느꼈습니다.”
- 여의도로 발길을 돌리며 ‘나도 정치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요.
“저는 대학 시절부터 정치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논문 쓸 때도 정책적·예산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에 쓴 걸 보면 아마 양이 안찬다고 할까, 의지와 철학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은 결국 정치 아니겠느냐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또 돌아가신 김동영 전 장관 자택에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1년 정도 기숙을 하고, 4년 내내 드나들면서 민주산악회 짐꾼 노릇 많이 했습니다.”
박근혜 대표, 무서울 정도로 대범
- 김동영 전 장관의 죽음이 YS가 정권을 차지하는 데 밑거름이 됐는데 민주계가 권력투쟁엔 선수들이지만 국가 경영엔 좀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까.
“지나서 보면 YS나 DJ나 현 정부나…. 이젠 검증받고 노하우가 필요한 시대 같습니다. 국민들도 이젠 시스템적으로 훈련됐지요. 검증받은 사람 아니면 앞으론 발붙이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목표나 취지가 옳다 해도 안정성이라든가 무게중심, 통합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보지 않겠습니까. 이제 좀 제대로 검증받은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 실패한 대통령이 돼있지 않습니까.”
- 노무현 대통령도 YS 때문에 정치 입문했고 이쪽이 고향인데 어떻게 평가합니까.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원합니다. 국가 균형발전 등 그 분이 추진하는 여러가지 일에 대해 큰 원칙은 찬성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국민 공감대 형성에 있어 방법상·절차상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불공평한 것은 못참지 않습니까. 배고프더라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통합에 무게를 두면서 가줘야 국가 장래에 좋습니다. 또 하나 우려는 전체 틀과 방향은 맞지만 오히려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듭니다. 그런 걸 걸러야 하는데 이렇게 서두를 이유가 없습니다. 노 대통령의 방향은 옳지만 추진 방법 때문에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 특히 잘못하는 것이 뭐라고 봅니까.
“대통령 자리는 말을 아껴야 한다고 봅니다. 갈등을 아우를 수 있는 용어, 통합의 용어를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중심적 사고와 주변적 사고를 얘기하는데 국민들이 ‘딱 잘라 나는 여기 속하는구나’라는 생각, 분열적 사고를 갖게 하면 안됩니다. 하지만 그 분의 여러가지 의지들은 역대 정권 누구보다 평가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 박근혜 대표는 잘 하고 있습니까.
“그래도 벼랑 끝의 한나라당을 살려낸 사람 아닙니까. 제가 가까이서 볼 때 무서울 정도로 대범한 것 같습니다. 자잘한 데 연연하지 않고 툭툭 치고 나가는 모습이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받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반사적인 부분도 있지만 훌륭한 지도자의 자격을 갖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 총선 이후 한나라당이 야당답지 못하다, 나라가 잘못가고, 대통령이 잘못하는데 제1야당이 너무 흐물흐물하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는데….
“지금 여당은 안정감을 주지 않고 오히려 야당같습니다. 갈등의 통합이나 안정감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를 오히려 박 대표가 충족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나 싶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저는 그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또 박 대표가 그런 판단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대표는 쉽게 얘기하고 그래서 국민들이 편안하게 생각합니다. 야당이지만 오히려 믿음을 주는 쪽입니다. 물론 나라 장래와 직결되는 부분에는 예각을 세울 필요가 있고 박 대표가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을 던질 수도 있는 분이라고 봅니다.”
아버지·어머니 가장 존경해
- 김 지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정치적 야심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뭐, 야심이나 꿈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다음 단계 얘기보다는 지금이 중요합니다. 군수나 도 의원하고 싶을 때 현직을 상대로 저 양반하고 붙으면 이길 수 있느냐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도 의원 때는 상대가 이강두 의원 친 처남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지금 내가 신뢰받지 못하면 미래가 없습니다. 도지사가 됐으니까 도민들이 ‘저놈 한번 키워줘도 되겠다, 믿을 수 있는 놈이다’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게 모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은 아직 얘기하기 힘듭니다. 이것으로 끝날 수도 있고.”
- 도청 현관 계단 벽에 ‘사람이 희망’이라는 박노해 시인의 시구를 크게 붙여 놓았던데 무슨 의미입니까.
“모든 정책이 최종적으로는 사람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갖는 최종 목표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겁니다. 이런 제 생각을 박노해 시인이 잘 표현한 걸 나중에 알았고, 그래서 틈틈이 얘기합니다.”
- 두 자녀의 아버지로서 자녀교육에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뭡니까.
“자식들한테 ‘니가 자전거 기능인이 되든 뭘 하든 기본적으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자식들이 공부를 좀 하는 편이지만 성적 갖고 ‘너 이것밖에 안되느냐’고 한 적은 없습니다.”
-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떻게 봅니까.
“저력있는 민족 아닙니까. 우리는 벼랑 끝에서 오히려 힘을 발휘했습니다. 또 지방자치제를 상당 기간 시행하면서 자치 역량도 알게 모르게 강화됐습니다. 한ㆍ일 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물결은 중앙논리식 사고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부분으로 봐선 희망이 있습니다. 비전을 갖고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이라크 파병엔 동의합니까.
“동의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아직은 수직이니 수평이니 말하기 전에 같이 가야 합니다. 가는 게 국가 장래를 위해 좋습니다.”
-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큰 틀에서 DJ의 햇볕정책의 연장인데 잘 하고 있다고 봅니까.
“지금 북한에 많은 것을 주고 물꼬를 튼 부분이 있지만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은 당근밖에 안주는데 우리 나름대로 채찍도 휘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퍼주는 것 자체가 원칙인지 모르지만 원칙이 없는 것 같아 국민들이 불안해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들이 하나하나 모여 역사적 변화를 만든다고 봅니다. 저는 역사적 변증법을 믿습니다.”
-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촌놈을 이렇게 키워주셨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가장 존경스럽지요.”
- 아버지의 어떤 점이 존경스럽습니까.
“아버님은 사업하다 말아먹고 제가 어릴 때 소장사했습니다. 천시하는 직업이지만 아버지한테는 다들 깍듯한 분위기였습니다. 아버님도 천대받는 사람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들을 챙겨주셨습니다. 아버님은 자식들 공부 다 시키고 나면 냄새나는 몸을 비누로 다 씻고 손떼겠다고 했고, 실제 자식들이 대학 졸업한 후 그만두셨습니다. 저는 소 키울 때 꼴 베는 숙제가 가장 싫었는데 지금도 손에 낫 자국 흉터가 곳곳에 있습니다. 아무튼 아버지는 우리한테 많은 것을 진하게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 공무원 인사 때 노조 대표의 동의를 받겠다고 약속했는데 노조와 타협한 겁니까.
“제가 동의를 구하겠다고 한 것은 공무원들의 시도간 교류의 경우입니다. 도 자체 인사는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직원들의 98%가 가입된 단체를 인정하지 않으면 장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점입니다. 또 이번에 합의한 내용을 보면 인사정책을 펼 때 전향적으로 노조의 뜻을 반영하겠다는 것이고, ‘자치단체장의 인사권 침해를 하지 않는 범위 내’라고 못박았습니다. 앞으로는 공무원들도 서로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번 조치를 한 단계 진일보 하는 것으로 봐야지 법외단체를 불법적으로 인정한 것처럼 보는 시각이 문제입니다.”
◈ 당당한 ‘CEO’… 운동권·신인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당당했다.”
1시간여 첫 대면 인터뷰 동안 ‘42세 도백’ 김태호 경남지사에게서 느낀 인상이다. 우선 185㎝, 86㎏라는 장한(張漢)의 체구는 그에게 ‘애송이 도지사’ 느낌을 거두게 하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또 어떤 질문에서건 그는 막힘이 없었다. ‘한국의 오늘과 미래’ ‘농촌 문제’ ‘이라크 파병’ ‘노무현·박근혜’…. 정치부 기자 15년여 동안 한국의 역대 대통령, 내로라하는 정치권·행정부의 실세들을 어지간히 만나보았으나 그들에 비해 결코 뒤짐이 없이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또 서울대 농대 80학번인 그에게선 그 또래의 정치인에게 진하게 풍겨나오는 ‘운동권 냄새’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CEO 냄새가 났다. 36세 경남도의원, 40세 거창군수, 42세 경남도지사라는 최근 6년간의 그의 행정가적 경력이 그런 그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한나라당 내에서 “김태호를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가 솔솔 나오고 있는 이유가 빈말이 아닌 듯했다. ‘소 장수’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박노해의 시구를 좌우명으로 삼고, 또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는 두 자녀를 구박하지 않는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경남지사 김태호’. 중앙무대에서 눈여겨봐야 할 인물임이 분명했다.

* 이 기사는 주간조선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
(인터뷰=김민배 주간조선 편집장 baibai@chosun.com)
(정리=정장열 주간조선 기자 jrchung@chosun.com)
[조선일보 2004.07.31]

Posted by no1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