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에서 갈등의 원인은 무엇이고, 또 어떤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가? 갈등은 무엇을 가져오게 하며, 갈등이 없는 사회가 좋은 것인가, 아니면 발전을 위해서 갈등은 필요한 것인가? 이와 관련해 박종화(경동교회 담임목사)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은 "죽은 사회에는 갈등이 없다"며 "살아 움직이는 사회는 갈등이 필연적으로 있다"면서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갈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선진한국의 갈등과 협력'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서 "(우리사회는) 남과 북이 상이한 체제의 분단국가로 발돋음 하면서 지나온 민족내부의 갈등체제가 우리가 극복해야할 아픔"이라며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민족 내적 갈등은 내적 삶과 사고의 심연 속에 깊은 뿌리를 박아놓았다"고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깊게 패인 갈등의 골을 꼬집었다. 이어 남남갈등과 관련해 "자유민주체제의 속성상 다양한 견해와 입장이 분출되고, 때로는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생산적으로 용해되고 응축되는 사회적 합의의 단계를 진입할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면서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갈등은 자유로운 민주사회의 특성이자 활력소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솔로'로서의 역할보다는 '심포니'로서 화음을 이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솔로가 아닌 심포니적 리더십을 필수 요인으로 갖추어 나갈 때 민주사회는 심포니적 공동체로서 의견의 다양성을 갈등으로가 아닌 화음으로 통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극우적 사고나 극좌적 사고와 발상은 사회를 깨고 파괴하는 암적 존재"라며 이를 피해야 함을 역설했다. 또 기조연설에 이어 진행된 세미나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도 건전한 갈등은 사회발전을 가속화시키지만 룰이 없는 상황에서의 무비판적 갈등은 오히려 편가르기 등 사회불안만을 야기 시킨다고 밝혔다.
다음은 박종화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의 기조연설 전문 내용임.(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선진한국의 갈등과 협력 주지하다시피 우리 민족의 분단 자체가 갈등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일제식민지 지배가 갈등구조의 텃밭을 제공했습니다. 미·소 연합의 한반도 개입으로 식민지배가 끝났으나 세계 지배권을 놓고 냉전적 해게모니 갈등을 벌였던 미·소의 대결과 그로 인한 세계 지형의 갈등구조가 고스란히 한반도의 분단된 해방 내지 해방된 분단의 아픔 속에 내재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이런 국제 갈등 구조와 동일한 맥락에서 남과 북이 상이한 체제의 분단국가로 발돋음 하면서 지나온 민족내부의 갈등체제가 우리가 극복해야할 아픔입니다. 더욱이 남북간의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민족내적 갈등은 내적 삶과 사고의 심연 속에 깊은 뿌리를 박아놓았습니다. 이 뿌리에서 자란 남북의 상이한 나무는 상이한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다. 두 나무가 선 자리는 가장 가깝지만 열매로 보면 가장 먼 거리를 두고 대치한 채 살아왔었습니다. 다행히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의 집단 붕괴와 함께 찾아온 국제사회의 탈냉전 분위기와 함께 남북간의 관계도 적대적 대결위주의 빙하가 깨지고 대화와 교류·협력의 과정을 진척시켜 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정책상, 분위기상의 부침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커다란 편차를 보여 왔음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주체'를 숭상하는 북한의 경우 불변인 듯 보이는 영구집권의 '주체세력'이 갈등해소에 나서겠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남한의 경우 집권세력은 선거에 의해 바뀔 수밖에 없고 동시에 갈등의 발화, 화해가 이 나라의 국민인 국민의 자유로운 토론과 합의에 의해 이루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한 사회는 분단에도 불구하고 또는 오히려 분단 속의 경쟁 때문에라도 혼신의 힘을 다하여 오늘날 소위 선진국가로 진입하려는 단계에 이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리고 남한사회내의 경우 남북문제를 중심한 갈등 역시 과거의 적대적 냉전 대결 속에 잠복되었던 것이 탈냉전의 해빙분위기를 타고 공론의 광장으로 등장한 것이라 봅니다. 자유민주체제의 속성상 다양한 견해와 입장이 분출되고, 그것들이 때로는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생산적으로 용해되고 응축되는 사회적 합의의 단계를 진입할 수도 있음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갈등은 자유로운 민주사회의 특성이자 활력소일 수 있습니다. 특히 선진화로 이행하는 사회일수록 민주적 삶의 바탕 위에서 사회구성원이 누리는 자유가 나 홀로의 이기주의적 자유를 넘어서는 함께 사는 "이웃앞에서, 이웃과 함께"누리는 자율적 결단의 은총임을 깨닫고 실천하는 사회일 것입니다. 민주적 사회공동체의 핵이 자유라면, 자유는 동시에 민주적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구성요인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선진 민주사회에서 누리는 이 자유는 따라서 고귀한 '권리'이자 '의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유민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바람은 이것들입니다. 첫째는 '오늘'의 시점에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은 지난날을 '돌아보며' 냉철한 분석과 반성을 하는 것이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앞으로의 미래를 '내다보며' 합리적으로 기획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 두 길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합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둘의 중성적 결합이나 소극적 중도가 아니라 먼저 '내다보며'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되 항상 '돌아보며'의 역사속에 담긴 애환과 아픔을 잊지 않고 추진하는 '선진적 실용주의'가 필요하다는 바램입니다. 둘째는 '심포니적 공동체'를 이루는 갈등해소의 방안을 희망합니다. 우리의 민주사회는 거대한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장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참여하는 악기는 다양합니다. 소리와 음색도 다양합니다. 솔로가 아니라 심포니입니다. 중요한 것은 화음입니다. 악기마다의 독특한 음색이 화음을 못 이루면 시끄러운 음악이겠지만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면 멋진 심포니가 됩니다. '다양성 속의 하나됨'이 화음이라면 이 속에서 다양한 악기는 자신의 고유한 음(=자유)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동시에 최상의 화음(=공동체)을 생산해 냅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화음을 내 특정 악기를 편애하거나 폄하하거나 악보의 기본에 충실치 못한 객기를 부리는 지휘자는 아름다운 화음을 내지 못합니다. 자신의 소신 있는 악보해석을 발하지만 상상 솔로가 아닌 '심포니적 리더십'을 필수요인으로 갖추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민주사회는 심포니적 공동체일 것이고, 의견의 다양성을 갈등으로가 아니라 화음으로 통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람이 있습니다. 민주공동체는 건강한 몸과 같습니다. 건강한 몸을 지탱하는 지체는 오른팔과 왼팔,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가 서로 몸을 지탱해 주어야 합니다. 한쪽이 병들면 중풍환자가 됩니다. 건강한 몸이 아닙니다. 실용을 중시하고 구현하는 몸의 중도는 바로 이런 균형을 제대로 맞추어야 합니다. 자유와 민주를 전제로 하는 몸인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것임을 전제로 좌우의 팔과 다리가 기능해야 합니다. 그런데 몸을 병들고 아프게 하는 것은 암세포입니다. 암세포는 건강한 좌우를 가리지 않고 침투합니다. 극우적 또는 극좌적 사고와 발상은 사회를 깨고 파괴하는 암적 존재입니다. 중도주의는 가치중립적 중간이 아니라 자유 민주사회의 심포니적 공동체를 파괴하는 암적요소인 극단주의를 척결하고 '열린 오른쪽'과 '합의의 왼쪽'을 암세포의 침투에서 보호하여 건강한 몸을 이루도록 하는 역할이어야 합니다. 극단주의는 모두의 자유를 파괴합니다. 스스로의 자유도 파멸시킵니다. 죽은 사회에는 갈등이 없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사회는 갈등이 필연적으로 있습니다. 살아 있기에 갈등이 해소되지 못한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해소'로 가는 길목에는 항상 갈등을 적절히 평화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면 해소라는 장기적 목표를 부분적이나마 또 단계적으로 '선취'하는 행복이 있습니다. 민주적 '선취의 과정'속에 갈등은 점점 해소되어 가고 궁극적으로는 평화를 만드는 통일의 열매를 딸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끝)
[코나스 www.konas.net 2009.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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